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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kKim - 시 분석] 송종찬 시인의 「땅끝마을」분석문

ClarkKim 2018. 11. 1. 23:57

땅끝마을

 

송종찬

 

땅끝마을에 이르면 정말 끝이 보일까. 비좁은 세상 속에서 수없이 끝을 외쳤네. 외딴 집들이 이따금 빨간 신호등을 켜는 밤 검은 필름을 돌리듯 차를 몰았네. 보성 강진 소읍의 이름들이 점―점 나타났다 사라지고 생의 필름이 끝나는 곳에서도 빠르게 지나쳐온 삶의 골목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파도가 자막처럼 흔들리고 있었네. 팽나무 우거진 사자봉에서 바라본 바다, 산은 섬으로 밤은 낮으로 이어지며 땅 끝은 時空(시공)의 끝이 아니라 내가 달려온 速度(속도)의 끝이라고 파도는 나지막이 속삭여주었네. 나는 무엇을 위해 밤새 달려왔던가. 나는 너무 쉽게 시작을 생각하고 지나쳐온 산과 들이 그리워졌네.

 

  1연에서는 화자가 어떤 심정으로 땅끝마을에 가려고 한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생의 필름이 끝나는 곳에서도 빠르게 지나쳐온 삶의 골목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란 대목에서 자신이 삶을 빠른 속도로 살아왔음을 자각하고 있다. 외딴 집들이 빨간 신호등을 켠다고 서술한 건 아마도 멈추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망을 표현한 것 같다.

2연에서 화자는 사자봉에서 섬과 바다를 바라다본다. 땅끝은 시간과 공간의 끝이 아니라 속도의 끝이라는 파도의 말을 들으며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을 보고 달려온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이 시는 한눈에 봐도 긴 시도 아니고 내용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 별 생각 없이 훑었다. 그런데 1연의 마지막 줄을 읽고 다음 연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참을 걷다가 못이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봤는지 셀 수 없다. 여기서 '삶의 골목들'이란 무엇을 나타낼까. 삶의 골목들이란 우리 삶의 과정이고 사건이다. 존재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뼈대이기도 하다. 과정을 잊은 채 앞만 보고 달려가다 목표를 잊고서야 비로소 우린 멈춘다. 하지만 빠르게 달려온 나머지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이 시는 속도만을 느끼며 살아갈 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며 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시에서 좋았던 구절은 단연 '생의 필름이 끝나는 곳에서도 빠르게 지나쳐온 삶의 골목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이다. 반면 별로였던 구절은 '파도가 자막처럼 흔들리고 있었네'이다. 내 어휘력이 낮아서 이해를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자막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쓰여진 글자이다. 다른 뜻은 세균이다. 그런데 아무리 시적 허용이 된다지만, 파도가 어린아이 손에 쥐어진 연처럼 흩날렸다, 도 아니고 자막처럼 흔들렸다, 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다. 그래서 별로였던 구절로 꼽았다.

  끝으로 이 시의 주제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2018.11.01

Clar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