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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젊은 화가

ClarkKim 2019. 5. 17. 23:58

  나는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보았다. 매끈한 이마, 움푹 패인 눈과 검은 눈동자, 눈 사이에서 인중까지 이어지는 콧날, 립스틱을 발라 윤기나는 입술 그리고 베일 것 같은 턱선. 그녀는 파란색 페도라를 쓴 젊은 남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나와 그녀의 거리는 약 오 미터. 그녀는 온 정신을 자신의 그림에 쏟아붓는 듯 단 한 번도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벤치에 앉아 그녀를 더욱 더 자세하게 관찰했다.

  그림 그리기를 마친 그녀가 남자에게 초상화를 건넸다. 그녀에게서 초상화를 건네받은 남자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보면 볼수록 흥미로웠다. 눈썹은 웃고 있는데 입술은 굳게 다문, 그냥 이상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초상화를 찢었다. 찢은 것으로도 모자라 라이터로 불을 붙여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지갑에서 지폐 네 장을 꺼내 그녀가 사용하던 나무이젤에 던졌다. 그림을 이런 식으로 그렸느니, 돈을 주기 아깝다느니 하는 말도 없이 돌아섰다. 나는 더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자의 모욕적 행동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다는 듯.

  그녀는 곧 자리를 정리했다. 여전히 입꼬리는 올라가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많은 듯 계속해서 눈동자를 굴렸고 이따끔씩 움직임도 멈췄다. 나는 그녀가 동작을 멈출 때마다 가지고 온 물을 조금씩 마셨다. 이제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다시 자신에게 지폐를 던져줄 상대를 찾으러 갈 텐가 아니면 그림 솜씨를 다듬을 학원으로 향할 것인가, 나는 예의 그 벤치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좇았다.

 

2019.05.17

Clark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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