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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맞으며 서 있다. 땀을 쏟아내며 일하던 날 이후 맞이하는 휴식의 기간에 나는 발꿈치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내 삶을 아우르는 기억의 한 조각을 집게손가락으로 벌리면 그 속엔 너와 했던 모든 것이 떠오르곤 한다. 한 번은 여수의 밤 바다를 보기 위해 무작정 기차를 탔다. 늦은 밤 기차가 잠든 승객을 태우고 까맣게 흘러내린 물감 같은 밤에 빛으로 구멍을 내며 끝없이 달렸다. 나는 그 안에 타 있는 승객들 중 한 명이었다. 단지 여수라는 지역과 밤의 바다를 보기 위해 깨 있었는데 그 밤은 이상하리만치 하얗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잠든 옆자리 승객에 눈길을 주는 일을 반복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모래사장 위의 소라껍질 대신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선박들뿐이었다. 너와..
있잖아. 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날이야.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바라보고 듣기만 하는 날. 다른 날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날이라면, 오늘만큼은 수동적으로 받고만 싶은 날.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침묵을 지키고픈 날이야.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을 안 했어. 누군가 말을 해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지. 당장 뭘 할 수가 없어. 모처럼 쉬는 날이니만큼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었거든. 어젠 일주일 분량의 말을 다 쏟아낸 날이었지. 오랜만에 만취하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지. 그렇게 속을 게워내듯 말하고 나니 시원했어.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에 바쁜 삶을 살고 있으니 속내를 말할 시간이 없었지. 어젠 그렇게 말을 했으니 오늘은 입을 닫고 ..
나는 J를 잘 모른다.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많진 않은 그런 정도. 그러다 언젠가 음악을 듣던 중 그의 노래를 듣게 됐다. 하루의 끝 첫 소절을 듣자마자 뺨이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후렴구에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하는 대목에선 눈물이 흘렀다. 나는 슬픔이 끓어오르다가 잠잠해지는 그 감정을 아직도 글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J는 그렇게 갔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생의 마감, 끝. 그가 어떤 마음으로 생을 등졌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그 병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구한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털어놓는다 해도 누가 이것을 알아줄 것이며, 어떻게 해도 위로 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죽음이란 참 묘한 기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