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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내다

걸어서 세상 속으로

ClarkKim 2023. 11. 10. 16:41

   한동안 허리통증으로 장시간 침대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냉동감자가 담긴 박스를 팰릿에 이적하고, 그걸 거래처에 납품하는 것이다. 박스의 무게가 최소 10kg에서 20kg까지 되다 보니까 허리나 등, 다리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데, 일주일에 5일을 근무하니 통증이 쌓이고 쌓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아니, 단순히 느낀 것을 넘어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렇게 나는 힘들게 모은 연차를 삼일씩이나 연달아 사용하게 됐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걷고 싶다.', '밖으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싶다.' 나는 비교적 허리가 덜 아팠을 때, 그러니까 걸을 수 있었을 때를 떠올렸다. 하늘을 날다 지친 새가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소리, 풀과 풀이 몸을 부딪히며 내는 소리, 도로를 가르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소리뿐인가? 잿더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냄새, 밭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쇠똥 냄새, 자동차 매연 냄새, 누군가의 향수 또는 샴푸 냄새, 그리고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비행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영역표시를 하는 동물들. 걷는다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다는 게 못내 슬픔으로 작용했다. 나는 눈물 대신 한숨을 흘렸다. 다시 일어나야 하는데, 자꾸 좋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다시 걷자."

   생각이 말로 바뀌어 내 입에서 나온 순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사실 일어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허리에 힘을 줄 수가 없어서 몸을 옆으로 돌아눕는데 몇 분, 돌아누운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몇 분,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는데 몇 분. 걷기까지 또 몇 분. 지금 이대로 문을 열고 나가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싶어서 나는 몇 미터 되지 않는 거리를 이 악물고 걸었다. 걷는 게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 어정쩡한 자세로 걷다 보니 이 정도면 밖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작은 복도에서 맴도는 차가운 공기가 내 코로 빨려 들어왔다. 원래라면 춥다는 생각이 들었겠는데, 나는 그 차가운 공기마저도 감사했다. 집 안에서의 공기와 집 밖의 공기가 크게 다를 것 없을 테지만, 아무래도 답답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집 안의 공기가 쾨쾨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가로 나와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었다. 정말 말 그대로 한 걸음씩이었다. 나는 발에서 무릎, 허벅지, 골반으로 이어지는 모든 힘을 느끼며 걸었다. 직접 걸어보니 '이 아픈 와중에도 걸을 수는 있구나'하면서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처음 걸을 때는 발을 내딛을 때 허리가 아팠으나 차츰 허리통증이 가셨다.

   나는 마음껏 주변을 돌아보며 걸었다. 매일 차로 운전해서 다니던 길을 두 다리로 걸으니 색다르단 걸 느꼈다. 그러면서 왜 이 좋은 걸 나는 멀리하고 살았는가 하면서 반성했다. 멀리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작은 교 위에 올라섰는데, 작은 남자아이가 보였다. 한 다섯, 여섯 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였다. 아이는 한 걸음 두 걸음 폴짝폴짝 걷다가 다시 제자리에 서서 산책로 옆에 난 풀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듯했다. 나는 아이의 순수함에 미소를 지었다. 근데 아이의 바로 뒤에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따라 걷고 있었는데,

   문득,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저 아이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궁금할 시절. 그럴 때 나의 어머니도 저렇게 한 걸음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간신히 울음을 참아내고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몇 걸음 더 가더니 여자에게 안겼다.

   걷는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걸음으로써 체중을 감량할 수도 있고, 체력을 기를 수도 있다. 또 걷는다는 것은 빠르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한 걸음 비켜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몰랐던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듯. 왜냐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살아가는 것은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걷자. 밖으로. 또 세상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