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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푸른색은 안쪽에서 빛난다김승해푸른빛에 출렁출렁 발목 적시며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참나무 숲사람들 해찰치며 두들겨 댄나무마다돌돌만 잎을 두른도토리거위벌레 알들의 잠이 깊다푸른빛 떠메고 오르는한낮의 깊은 잠에덜 익어 떨어 진 도토리 한 알도함부로 들어올릴 수 없는 무게등줄기 시퍼렇게 솟구쳐 오르는알들의 환한 잠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푸른빛에 출렁출렁 발목 적시며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참나무 숲화자는 푸른빛이 날 법한 나뭇잎을 헤치면서 참나무숲을 걷는다.사람들 해찰치며 두들겨 댄나무마다돌돌만 잎을 두른도토리거위벌레 알들의 잠이 깊다일반적으로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산란을 한다. 화자는 도토리거위벌레가 ..
누군가 나무를 흔들고 지나간 덕에 나의 눈 앞으로 봄 한 철 그득이 핀 벚꽃 잎이 잔뜩 쏟아져내린다 아, 이 흐드러진 아름다움이여! 잠시 자리에 서서 미(美)란 무엇인가 고민하다가도, 내가 느낀 아름다움이 어쩌면 벚나무에게는 영원한 작별이 아닐는지, 하여 우산을 펼치듯 두 팔 벌려 벚꽃 잎을 가슴에 안는다 이것이 벚나무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기 바라며 안녕 ClarkKim, 전문, 자작시 2024 .04 .08 (월)
잔뜩 목이 마른 어느 날 누군가 고운 손길로 씻어놓은 붉디붉은 사과 한 입 베어물면 달큰한 맛이 입 안 가득 풍긴다 정신없이 사과 한 알 목구멍으로 넘겨놓고 나서야, 깨닫는다 숨가쁘게 달려온 내 삶에 신이 주신 달콤한 선물이라는 것을 ClarkKim, 전문, 자작시 2024 .04 .02 (화)
걷는다는 것은 단지 두 발로 땅을 딛고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옆으로 갈 수도 있고 때론 뒤로 갈 수도 있다 어떤 때는 대각선으로 가기도 한다 걷는다는 것은 어찌 됐든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앞이든 뒤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두 다리를 뻗어 행하는 것이다 걷는 것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다 삶을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걷지 않은 적 없었다 빗방울이 내 몸을 적셔도 걸었고 눈보라가 내 눈을 가려도 걸었다 목적지를 정해 간 적도 있었고 아니, 목적지가 없어도 걸어갔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언젠가 대지의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소원을 말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말하고 싶다 삶이 끝날 때까지도 끊임없이 걷고 싶다고, 곧 올 현재를 향해 걷다가도 때로는 이미 지나버린 현재를 향해서도 걷..
신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신발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신발로 아스팔트 위에, 누군가는 모래 위에 역사를 남긴다 아스팔트 위로 걸어가면 신발은 깨끗하겠지만 자국이 남지 않는다 역시 모래 위를 걷는다면 조금 더러워지더라도 자국이 남는다 걸어도 되고 뛰어도 된다 설령 흘러들어온 바닷물에 자국이 지워질 지라도! 나는 언제라도 모래 위를 걸으며 살아 있는 역사를 남기고 싶다 ClarkKim, 「신발」전문, 자작시.
연 퇴근길 올려다 본 저녁 누군가 제멋대로 그린 바닷가, 모래사장 수평선을 응시하는 우리가 보인다 그때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리며 지나간다 봄바람에 소년의 머리카락이 그의 연줄이 가늘게 흔들리고, 모래를 털며 일어나는 너의 형체도 옅게 흔들린다 실만큼 가느다란 바람에 끊어져버린 너와의 연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꽉 잡은 소년의 두 손 그러나 손에서 벗어난 연, 그리고 너 나는 짙은 농도의 소금물을 머금은 바닷물이 연을 삼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ClarkKiM, 「연」전문, 자작시.
너에게 보내지 못할 N번째 편지 네가 보인다 기타를 치는 너의 손이 가냘프다 너의 손가락이 기타 줄을 퉁길 때마다 틱틱거리며 쇳소리 나는 나의 줄과 달리, 청아하다 마치 잎사귀가 머금은 이슬을 바닥에 떨어뜨릴 때 나는 소리처럼 한 손으로 꾹꾹 누르며 연주하는 너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 나는 말한다 새하얗게 다린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너를 내 사람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사랑보다 더 위대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른 말 필요 없이 너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김광석은 노래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다시 너를 생각할 때 송곳으로 풍선을 찌를 때처럼 펑펑 가슴속의 응어리가 터진다 그렇게 감정은 여러 번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가수와 시인은..
1001101 프로젝트는 대학시절 내가 나 혼자 진행했던 프로젝트이다. 100편의 시를 읽고 1편의 시를, 10편의 소설을 읽고 1편의 소설을 창작하기. 나만의 작품을 여러 편 만들고 공모전에 투고하기 위해 자긍심을 고취시킬 뿐 아니라 투지를 불태우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다. 졸업을 하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지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 전 다시 글을 쓰기 전까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과거에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1001101 프로젝트. 100편의 시를 읽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시 한 권도 100편의 시와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