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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무기력함을 느꼈다. 요즘 나는 무기력함을 자주 느낀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러는지 대강 안다. 나는 나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것은 조금 달랐다. 일, 일태기―일과 권태기를 결합한 합성어―인가? 하고 생각했다. 오전에는 클럽에서 나오는 믹스 음악을 들으면서 텐션 올리며 일을 했는데, 오후가 되자 곧 수확하는 벼처럼 텐션이 기울어 있었다. 그렇다. 나는 벼 대신 무기력을 수확했다. 이대로 운전하다간 중간에 차를 세울 것 같아서 소리도 질러보고 노래도 흥얼거려봤다. 하지만 일시적이었고, 한번 수그러든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뭐가 문제냐?" 나는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일태기인가?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이 일을 시작..
이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12화는 영재와 헤어진 준영이 경찰을 그만두고 포르투갈로 떠나서 사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상태로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한 준영은 그곳에서 수프와 빵을 먹은 후 셰프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셰프가 되기 위해 수강을 받고 셰프로도 꽤 유명해진다. 약 5년 후 인연이 닿아 영재를 만나게 된 준영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되게 따뜻하더라고. 음식이라는 게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줄 수도 있구나,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되게 멋있더라고. 난 이 레스토랑이 그런 레스토랑이었으면 해." 배고프고 힘든 순간에 우연히 발견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말도 안 통해서 쩔쩔매는 준영에게, 여전히 말은 안 통하지만..
별을 본 적이 언제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별을 좋아했을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꽤 오래 전부터 별을 좋아해왔다고, 동경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 별을 봤다. 아니, 오늘 별을 봤다. 비와 안개 때문에 별을 보지 못했던 지난 날들을 다 잊게 만들 정도의 강렬함을 느꼈다. 마음이 맑아지면서 이 별을 보기 위해 내가 살고 있구나싶었다. 별은 참 아름답다. 머리 위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들도 예쁘고, 아직 채 빛을 쏘아보내지 않은 별들 사이로 힘 있게 제 일을 다하는 별들도 아름답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땀을 흘려가며 내는 빛을 보고 '정말 아름답다'며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감사하고 미안하다. 언젠가는 내 땀방울이 빛을 낼 수 있겠지. 해서 먼 행성에서 내 땀방울을 보고 예..
아주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밤 공기를 들이마셨다. 바람도 내게 달려오고, 나도 바람에게 달려가며 우리는 서로에게 시원한 존재가 되었다.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내가 바람에게 했듯, 너도 내게 달려와줄 수 있느냐고, 나무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달에게 물었다. 굳이 시원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조금 더워도 괜찮아. 너만 내 곁에 온다면 아무렴 어때. 달은 곧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찰리 푸스와 위즈칼리파가 부른 이라는 곡이 있다. 영화배우 폴 워커 추모곡으로 쓰인 이 곡은 찰리 푸스가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하고 랩 부분만 위즈칼리파가 작사했다. 나는 이 노래의 첫 대목을 좋아한다. It's been a long day without you, my friend. And I'll tell you all about it when I see you again.' (친구야, 네가 없으니 하루가 길어. 너를 만나게 된다면 모두 얘기해줄 거야.) 단지 첫 대목만 읽었을 뿐인데 깊은 상실이 느껴진다. 상실…… 그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지독히 오래도록 남겨진 자를 괴롭힌다. 마치 환상통 같아서 분명 곁에 없음에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가 생기면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온 힘을..
평소 축구를 즐겨보고 직접 하는 사람으로서 극장골을 좋아한다. 그걸 축구에서는 라스트 미닛 골이라고 칭한다. 점수차가 2점차 이상에서 1점차로 좁히는 골은 만회골이라 하지만, 1점 내지 동점일 때 후반 45분 추가시간에 골이 터져 승부를 가르는 골은 언제 봐도 가슴이 뛰고 짜릿한 맛을 느껴 다시금 축구를 찾게 된다. 라스트 미닛 골 중 가장 좋아하는 경기가 있다. 11/12시즌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후반 45분 추가시간에 페르난도 토레스가 수비수의 롱패스를 받고 하프라인부터 바르셀로나 페널티박스 안까지 들어가 골키퍼 발데스를 제치고 골을 터뜨려 승부를 가른 경기이다. 혹 누군가는 원정다득점으로 토레스의 결승골이 아니더라도 결승 진출이라 하지만, 나에게 있어 토레스의 결승골은 의미가 크다. 그는 당시 ..
회사 동료가 곧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인데 곧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아쉽다. 한 달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같은 부서이지만 하는 일은 조금 달랐는데, 그래도 나는 친해지고 싶었다, 그 사람과. 편하게 E라고 칭하겠다. E는 누구에게나 예쁨을 받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E를 아는 사람은 E를 좋아하고 또 잘해주려고 하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로.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친해지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인사는 자주 나눴으나 막상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보니 이야기할 타이밍을 놓쳤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내가 E와 친해지고 싶었던 것중 가..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누군가는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단발머리를 좋아한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누군가는 긴 생머리에 끝부분만 펌을 준 여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남자만큼 짧게 머릴 자른, 귀걸이를 낀 여자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포마드로 머릴 올린 남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다운펌을 한 남자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어딘가에 앉아서 영화나 드라마, 연극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운동을 즐긴다. 누군가는, 누군가는, 누군가는 다 다르다. 비슷할지라도 똑같은 건 없다. 같은 취미로, 일정량의 호감을 가지고 만나도 각자 조금씩 나누어져 각자의 길을 간다. 그런 갈라짐은 동네에 하나씩 있는 골목 같아서 나는 종종 그런 골목의 한편에 서 있기를 즐긴다. 누군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