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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누군가 나무를 흔들고 지나간 덕에 나의 눈 앞으로 봄 한 철 그득이 핀 벚꽃 잎이 잔뜩 쏟아져내린다 아, 이 흐드러진 아름다움이여! 잠시 자리에 서서 미(美)란 무엇인가 고민하다가도, 내가 느낀 아름다움이 어쩌면 벚나무에게는 영원한 작별이 아닐는지, 하여 우산을 펼치듯 두 팔 벌려 벚꽃 잎을 가슴에 안는다 이것이 벚나무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기 바라며 안녕 ClarkKim, 전문, 자작시 2024 .04 .08 (월)
잔뜩 목이 마른 어느 날 누군가 고운 손길로 씻어놓은 붉디붉은 사과 한 입 베어물면 달큰한 맛이 입 안 가득 풍긴다 정신없이 사과 한 알 목구멍으로 넘겨놓고 나서야, 깨닫는다 숨가쁘게 달려온 내 삶에 신이 주신 달콤한 선물이라는 것을 ClarkKim, 전문, 자작시 2024 .04 .02 (화)
걷는다는 것은 단지 두 발로 땅을 딛고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옆으로 갈 수도 있고 때론 뒤로 갈 수도 있다 어떤 때는 대각선으로 가기도 한다 걷는다는 것은 어찌 됐든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앞이든 뒤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두 다리를 뻗어 행하는 것이다 걷는 것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다 삶을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걷지 않은 적 없었다 빗방울이 내 몸을 적셔도 걸었고 눈보라가 내 눈을 가려도 걸었다 목적지를 정해 간 적도 있었고 아니, 목적지가 없어도 걸어갔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언젠가 대지의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소원을 말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말하고 싶다 삶이 끝날 때까지도 끊임없이 걷고 싶다고, 곧 올 현재를 향해 걷다가도 때로는 이미 지나버린 현재를 향해서도 걷..

오랜만에 만났던 KIM JS형에게 드린 캘리그라피이다. 평소 나는 친밀한 상대에게 내가 쓴 작품을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그들에게 '당신은 내 소중한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하는 나만의 방식인 것이다. 그날도 어떻게 하면 형이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내실까 고민하다가 쓰게 된 문장이다. 마침 오마카세 식당에서 일하는 형에게 알맞는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벚꽃과 라는 간판을 그림으로 그려넣었는데, 후에 형은 가 간판이 아니라 그릇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던지. 그릇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하고. 형에게 "원래는 연어초밥을 그릴까했어요."했더니, 형은 "오마카세에서 연어초밥은 잘 안 만들어. 안 그리길 잘했어."했다. 역시 솔직한 게 참 멋있는 형이다. 아무튼 그날 형과 재미있는 ..

새로 산 펜으로 적어본 캘리그라피 글귀. 언젠가 내 작품에 썼던 장면 하나를 따 와 캘리그라피로 표현해봤다. '깜빡거리는 가로등/칠 바랜 벤치/벚꽃잎 떨어진 거리/거닐던 그곳의 전부가/오직 너와 함께 한/일상이었음을' 두 달 전 캘리그라피 모임에 처음 나가게 됐다. 그때 모임장님이 쓰는 걸 어깨 너머로 본 후 연습하다가 문득 이 글귀를 캘리로 써 보고 싶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사진으로 남겼다. 쓸 땐 내 실력이 이렇게 늘었나했지만, 막상 사진으로 남기고 보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싶다. 더 열심히 연습해야지. 캘리그라피 글귀를 쓴 날 : 2022/04/30 포스팅을 하는 날 : 2022/06/13
가장 아름다운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가장 즐겁던 날이 나에게도 있었다 가장 사랑스럽던 날이 나에게도 있었다 지금 내 얼굴엔 반쪽짜리 나이테가 그득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가장 따뜻하고 싱그럽던 그 봄날이 있었다 ClarkKim, 전문, 자작시 2022 .03 .26 (토)
봄비 내리면 떠나간 여인이 떠오르고 봄비 그치면 다가올 사랑을 기다린다 봄비 한 방울 뺨을 타고 흐를 때 나는 떠나갔던 사람과 다가올 사람의 안녕安寧을 소망하노라 ClarkKim, 「봄비」 전문, 자작시. 2022. 03.26 (토)
가을 그리고 삶 조심스레 다가온 가을의 어느 날, 양평 단월의 아늑한 카페에 앉아 붉게 물든 나뭇잎을 바라본다 얇은 커튼 사이로 가을 풍경 찾아오고 따스한 햇살 조각 내 손등 위에 살며시 내려앉는다 나는 어디쯤 왔는가 내 생애의 절반쯤 왔는가 아니면, 그 끝에 다다랐는가 인간의 생사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마치 처음의 네가 내게 말 걸어온 그날과, 마지막의 내가 너를 떠나보낼 수도 있음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가을은 그렇게 왔다가 가는 것이다 나에게로 왔다가 너에게로 갔다가 어디론가 떠나는 우리네의 삶처럼 그렇게, 가을은 간다 ClarkKim, 「가을 그리고 삶」 전문, 자작시. 2021. 11. 6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