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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여자 여자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여자의 오른손은 관자놀이에, 왼손은 다리 사이에, 몸은 옆으로 기울었고, 숨소리는 낮았다. 이불은 반쯤 덮여진 상태였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걸까. 나는 침대 앞에 놓인 거울이 있는 화장대 앞에 섰다. 거울에 내 모습이 비췄다. 퀭한 눈에 제멋대로 자란 수염. 셔츠는 어디에 벗어뒀는지 그리고 팬티도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몸인 상태였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나는 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모텔 방에 들어온 것도, 방에 들어올 때 여자를 데리고 온 것까지, 그리고 침대가 젖을 만큼 격렬하게 움직였던 일 모두,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무엇 때문에 술을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마신 것인가.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마시고 이름도 나..
아무거나 쓰기. 종류에 구애 받지 말고, 누가 이런 외설한 것들을 함부로 드러내는가 비난할지라도 상관하지 말고. 미성년자가 어쩌고하는 것들을 신경쓰지 말고. 그냥 쓰는 글. 일기든 수필이든 뭐든 쓰기. 자유롭게. 자유를 위한 자유를 쓰기. 압력에 굴복하는 순간 나의 성장은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맞으며 서 있다. 땀을 쏟아내며 일하던 날 이후 맞이하는 휴식의 기간에 나는 발꿈치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내 삶을 아우르는 기억의 한 조각을 집게손가락으로 벌리면 그 속엔 너와 했던 모든 것이 떠오르곤 한다. 한 번은 여수의 밤 바다를 보기 위해 무작정 기차를 탔다. 늦은 밤 기차가 잠든 승객을 태우고 까맣게 흘러내린 물감 같은 밤에 빛으로 구멍을 내며 끝없이 달렸다. 나는 그 안에 타 있는 승객들 중 한 명이었다. 단지 여수라는 지역과 밤의 바다를 보기 위해 깨 있었는데 그 밤은 이상하리만치 하얗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잠든 옆자리 승객에 눈길을 주는 일을 반복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모래사장 위의 소라껍질 대신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선박들뿐이었다. 너와..
너에게 보내지 못할 N번째 편지 네가 보인다 기타를 치는 너의 손이 가냘프다 너의 손가락이 기타 줄을 퉁길 때마다 틱틱거리며 쇳소리 나는 나의 줄과 달리, 청아하다 마치 잎사귀가 머금은 이슬을 바닥에 떨어뜨릴 때 나는 소리처럼 한 손으로 꾹꾹 누르며 연주하는 너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 나는 말한다 새하얗게 다린 정장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너를 내 사람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사랑보다 더 위대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른 말 필요 없이 너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김광석은 노래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다시 너를 생각할 때 송곳으로 풍선을 찌를 때처럼 펑펑 가슴속의 응어리가 터진다 그렇게 감정은 여러 번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가수와 시인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꽃을 맞으며 나는 11번가를 걸었다. 이 세상에 사람은 나 혼자뿐이라 생각하며. 나를 스치며 지나가던 사람이 실수로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도, 미안해요, 괜찮아요, 같은 말을 주고받지 않은 채 그저 나는 걸었다. 주황색 가로등이 나를 비췄다. 영화에서 나오는 연출, 그러니까 내가 가로등을 지나칠 때마다 하나씩 꺼지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으나, 그저 내 앞길을 벌겋게 물들이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살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근원적 질문은 뒤로 한 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내게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한 번 가로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답이기 때문이다. 왠지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는 중이라고 답하면 정말로 우린 이별을 했다고 믿게 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