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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내다

적당히, 적당하게 맺는 것

ClarkKim 2019. 4. 6. 21:16

  하루 정해진 양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드와이저 한 병을 샀다. 특별히 좋아하는 술이 있냐고 묻는다면 딱히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전엔 자몽이 들어간 소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술이라면 다 비슷비슷할 테니. 아마 내가 애주가가 아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술이 좀 당기는 날이었다. 글쎄, 이 역시 이유는 없다. 뭔가 지독하게 슬픈 것도 아니었고, 모종의 압력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역시 그냥 마시고 싶은 날 정도. 집에 와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간단하게 씻었다. 맥주를 먹기 위한 준비는 마쳤다. 평소엔 잘만 보이던 병따개가 먹을라치면 꼭 없다. 하는 수 없이 숟가락으로 병마개를 땄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를 보며 먹을 요량이었으나 한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져 맥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연락처 목록을 눌러가며 전화를 했지만 끝내 연락을 나누지 못했다. 다들 바빴는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는 말이었다. 술을 살 땐 별 생각 없이 샀는데, 전화를 하지 못하자 급하게 술이 당겼다. 허공을 응시하며 술 몇 모금을 마시다가 문득 슬퍼졌다. 연락처는 많은데 술 한 잔 마시면서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다는 게. 물론 친구들과는 자주 보니 구태여 시간을 내서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안타까운 건 한때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과의 시간이다. 젊은 날의 한순간을 빛내던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게 아닌가싶을 정도의 과한 자책이 든다. 각자 삶에 치여 한 번 두 번 전화를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설령 그 몇 년 동안 몇 번의 전화를 걸었고, 걸려왔겠지만 아마 각자의 사정으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렀고 우리가 과거에 함께 보냈던 모든 것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에도 속하지 못한 채 버려졌을지도.

  술이 밑바닥을 보이고 있다. 전화를 걸면서 마시고 괜히 슬퍼져 쓸쓸히 산책을 하면서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글을 쓰면서도 마셨으니 당연하다. 내일도 출근하는 날이니 이 정도면 기분은 냈다. 역시 글쓰기에 술은 불스원샷 같다. 글쓰기에 군더더기를 없애주며 추상적인 불순물 대신 구체적으로 연료 순환을 가능하게 해주니. 적당히 마신 오늘 같은 날이 좋다. 사람과의 관계도 오늘만 같기를. 너무 과할 필요도, 너무 메마를 필요도 없이 적당하게.

 

2019.04.06

Clar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