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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달달한 헤이즐넛라떼 한 잔 주세요

ClarkKim 2019. 5. 15. 00:01

 

  그는 땀에 젖은 셔츠를 입은 채로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들어선다. 처음 가는 카페인 듯 카운터 앞에서 머뭇거린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기 위해 그를 쳐다보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메뉴 목록을 눈으로 훑는다.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어요?"

  고객과 점원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결국 점원이 깼다. 점원의 물음에도 그는 멍하니 메뉴판을 응시한다.

  "글쎄요……. 뭘 먹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점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웃는다기보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에 가깝다. 그는 계속해서 메뉴판만 올려다본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다. 의도적이지 않은 그의 침묵에도 종업원은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서서 기다린다. 그는 결심한 듯 점원을 응시한다.

  "달달한 헤이즐넛라떼 한 잔 주세요."

  그는 말을 마치고 지갑을 꺼내다가 다시 덧붙인다.
  "세상에서 가장 달달하게 해주세요."

  계산을 마친 그는 어느 자리에 앉을지 고민한다. 천천히 걸어서 카운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좌석 앞에 선다. 앉을까 말까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걸음을 옮긴다. 창가 자리다. 의자를 소리나지 않게 당겨 앉는다. 주문한 커피가 나올 동안 그는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괸다. 허리가 아픈 듯 두어 번 자세를 고친다.

  네 번 정도 자세를 고치는 동안 종업원이 헤이즐넛라떼를 가져온다. 그는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탁자 위에 올려진 헤이즐넛라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헤이즐넛라떼. 이거라면 내 피로가 싹 풀릴 거야."

  그는 자기 암시를 하듯 중얼거린다.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라떼를 한 모금 들이마신다. 그의 목젖이 꿀렁거리는 순간,

  퉤!

  그의 기침에서 아주 작은 알갱이가 침과 함께 섞여나온다. 잘은 모르겠지만 설탕 같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헤이즐넛라떼를 마시면서 눈물을 흘린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달달할 것이다.

 

2019.05.14

글, 그림 Clark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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