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창작 (19)
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누군가는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단발머리를 좋아한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누군가는 긴 생머리에 끝부분만 펌을 준 여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남자만큼 짧게 머릴 자른, 귀걸이를 낀 여자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포마드로 머릴 올린 남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다운펌을 한 남자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어딘가에 앉아서 영화나 드라마, 연극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운동을 즐긴다. 누군가는, 누군가는, 누군가는 다 다르다. 비슷할지라도 똑같은 건 없다. 같은 취미로, 일정량의 호감을 가지고 만나도 각자 조금씩 나누어져 각자의 길을 간다. 그런 갈라짐은 동네에 하나씩 있는 골목 같아서 나는 종종 그런 골목의 한편에 서 있기를 즐긴다. 누군가가 ..
그는 땀에 젖은 셔츠를 입은 채로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들어선다. 처음 가는 카페인 듯 카운터 앞에서 머뭇거린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기 위해 그를 쳐다보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메뉴 목록을 눈으로 훑는다.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어요?" 고객과 점원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결국 점원이 깼다. 점원의 물음에도 그는 멍하니 메뉴판을 응시한다. "글쎄요……. 뭘 먹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점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웃는다기보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에 가깝다. 그는 계속해서 메뉴판만 올려다본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다. 의도적이지 않은 그의 침묵에도 종업원은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서서 기다린다. 그는 결심한 듯 점원을 응시한다. "달달한 헤이즐넛라떼 한 잔 주세요." 그는 말을..
여자 여자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여자의 오른손은 관자놀이에, 왼손은 다리 사이에, 몸은 옆으로 기울었고, 숨소리는 낮았다. 이불은 반쯤 덮여진 상태였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걸까. 나는 침대 앞에 놓인 거울이 있는 화장대 앞에 섰다. 거울에 내 모습이 비췄다. 퀭한 눈에 제멋대로 자란 수염. 셔츠는 어디에 벗어뒀는지 그리고 팬티도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몸인 상태였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나는 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모텔 방에 들어온 것도, 방에 들어올 때 여자를 데리고 온 것까지, 그리고 침대가 젖을 만큼 격렬하게 움직였던 일 모두,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무엇 때문에 술을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마신 것인가.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마시고 이름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