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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2019.06.23 그림, 글_ ClarkKim
찰리 푸스와 위즈칼리파가 부른 이라는 곡이 있다. 영화배우 폴 워커 추모곡으로 쓰인 이 곡은 찰리 푸스가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하고 랩 부분만 위즈칼리파가 작사했다. 나는 이 노래의 첫 대목을 좋아한다. It's been a long day without you, my friend. And I'll tell you all about it when I see you again.' (친구야, 네가 없으니 하루가 길어. 너를 만나게 된다면 모두 얘기해줄 거야.) 단지 첫 대목만 읽었을 뿐인데 깊은 상실이 느껴진다. 상실…… 그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지독히 오래도록 남겨진 자를 괴롭힌다. 마치 환상통 같아서 분명 곁에 없음에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가 생기면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온 힘을..
누구나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노트에 글을 적다가 오늘 산 캘리그라피 용지에 준비한 붓으로 'ㄴ'자를 그렸다. 그 밑에 다시 'ㄴ'자를 붙였다. M자가 되었고 그대로 사람 얼굴을 그렸다. 그러자 뭔가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것이 구체화되었다. 사랑을 전해주는 에로스.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에로스의 화살을 심장 한가운데 맞은 것처럼 볼이 붉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나는 그 감정을 사랑한다. 사랑을 사랑한다. 누군가가 내 마음에 들어올 듯 말 듯한다. 나는 역시 그것을 사랑한다. 먼저 손 내민 것도, 그쪽에서 내게 내밀어준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로스는..
연 퇴근길 올려다 본 저녁 누군가 제멋대로 그린 바닷가, 모래사장 수평선을 응시하는 우리가 보인다 그때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리며 지나간다 봄바람에 소년의 머리카락이 그의 연줄이 가늘게 흔들리고, 모래를 털며 일어나는 너의 형체도 옅게 흔들린다 실만큼 가느다란 바람에 끊어져버린 너와의 연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꽉 잡은 소년의 두 손 그러나 손에서 벗어난 연, 그리고 너 나는 짙은 농도의 소금물을 머금은 바닷물이 연을 삼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ClarkKiM, 「연」전문, 자작시.
평소 축구를 즐겨보고 직접 하는 사람으로서 극장골을 좋아한다. 그걸 축구에서는 라스트 미닛 골이라고 칭한다. 점수차가 2점차 이상에서 1점차로 좁히는 골은 만회골이라 하지만, 1점 내지 동점일 때 후반 45분 추가시간에 골이 터져 승부를 가르는 골은 언제 봐도 가슴이 뛰고 짜릿한 맛을 느껴 다시금 축구를 찾게 된다. 라스트 미닛 골 중 가장 좋아하는 경기가 있다. 11/12시즌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후반 45분 추가시간에 페르난도 토레스가 수비수의 롱패스를 받고 하프라인부터 바르셀로나 페널티박스 안까지 들어가 골키퍼 발데스를 제치고 골을 터뜨려 승부를 가른 경기이다. 혹 누군가는 원정다득점으로 토레스의 결승골이 아니더라도 결승 진출이라 하지만, 나에게 있어 토레스의 결승골은 의미가 크다. 그는 당시 ..
김재희 리포터(이하 '리') : 안녕하세요. 의 김재희 리포터입니다!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제법 추운 날씨입니다. 그럼에도 며칠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ClarkKim 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ClarkKim(이하 'C') : 안녕하세요. 소설가 ClarkKim입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 : 저는 평소에 C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울리는지 궁금했어요.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는 편인가요? C : 음, 저는 자료 수집도 자료 수집이지만 제가 작품 안에 직접 들어가서 쓴다는 마음으로 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거든요. 만약 사람과 사람이 이별한다는 상황이라면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구체화합니다. 이야기를 꾸며낸 게..
나는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보았다. 매끈한 이마, 움푹 패인 눈과 검은 눈동자, 눈 사이에서 인중까지 이어지는 콧날, 립스틱을 발라 윤기나는 입술 그리고 베일 것 같은 턱선. 그녀는 파란색 페도라를 쓴 젊은 남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나와 그녀의 거리는 약 오 미터. 그녀는 온 정신을 자신의 그림에 쏟아붓는 듯 단 한 번도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벤치에 앉아 그녀를 더욱 더 자세하게 관찰했다. 그림 그리기를 마친 그녀가 남자에게 초상화를 건넸다. 그녀에게서 초상화를 건네받은 남자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보면 볼수록 흥미로웠다. 눈썹은 웃고 있는데 입술은 굳게 다문, 그냥 이상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초상화를 찢었다. 찢은 것으로도 모자라 라이터..
회사 동료가 곧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인데 곧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아쉽다. 한 달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같은 부서이지만 하는 일은 조금 달랐는데, 그래도 나는 친해지고 싶었다, 그 사람과. 편하게 E라고 칭하겠다. E는 누구에게나 예쁨을 받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E를 아는 사람은 E를 좋아하고 또 잘해주려고 하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로.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친해지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인사는 자주 나눴으나 막상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보니 이야기할 타이밍을 놓쳤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내가 E와 친해지고 싶었던 것중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