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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kKim - 감상문] 드라마 <퍼시픽>

ClarkKim 2020. 4. 9. 02:59



  퍼시픽은 2차세계대전, 미 해병대가 과달카날, 페레리우, 오키나와 등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했던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실화 바탕의 드라마이다. 나는 주인공으로 나왔던 인물 중 유진 슬레지라는 인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퍼시픽 10화 중 9화가 인상적이었다. 숱한 전투를 겪으면서 주인공 유진 슬레지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나타나는 게 보이면서, 마음이 아팠다. 9화 중반에 상관의 사격 중지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보조무기(권총)를 이용해 적을 사살하거나 "일본군이 항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 총으로 쏴 죽여버리게."라고 말하는 등 잔뜩 독이 오른 사람이 되면서도, 어린 일본군이 항복 의사를 표하지만 동료 군인이 사살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기도 하고 부서진 집 안에서 총으로 자기를 쏴 달라는 한 여인을 꼭 안아주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퍼시픽은 미군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본 모습이고, 역사적으로 피해를 받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는 일본군의 모든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또한 오키나와의 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이용한 자살테러는 심히 충격이었다. 승리를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는 모습이 무섭기까지 했다. 만약 내가 저 전쟁터에 나갔더라면 나 역시 반쯤 미쳤을 것이다. 총알이 빗발치고 조금 전까지 얘기를 나누던 사람이 다치거나 죽고 조금 잠들라치면 쏟아지는 포탄세례에, 내 동료가 전쟁에 미쳐가는 과정을 보고 있는다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10화 마지막에서는 유진 슬레지가 아버지와 함께 새 사냥에 나서는데, 총을 쥐고 몇 걸음 걷던 유진이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면접관이 '군대에서 배운 게 뭐냐'고 하자 일본군을 죽이는 일을 했다고, 제일 잘 쏴죽였다고 말하며 돌아 나오는 걸 보며 뭐라 설명하기 힘든 생각이 들었다.

 

  OOM 무도회장에서 친구 시드니 필립스에게 유진 슬레지가 이런 말을 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많은 사람들 중 우린 어떻게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돌아왔을까."

  "그렇지만 해가 뜨면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받아들여야 해."

  실제로 시드니는 자신이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반면 유진은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만약 나라면 나 역시도 유진처럼 초롱초롱하던 눈이 말라비틀어진 꽃처럼 시들었을 것이다. 이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성격적인 문제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옆의 전우가 죽었는데, 지금의 나는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것이고, 사람이라면 그 충격적인 일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면서도 시드니 필립스의 말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죽음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른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떻게든 말이다. 퍼시픽이라는 드라마는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면서.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10화 마지막에 나무 밑에서 멍하니 있는 유진 슬레지에게 그의 어머니가 '미래에 대해 계획을 짜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유진은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고 말한다. 유진의 어머니는 당분간이라는 게 정확히 얼마냐고 말한다. 유진의 아버지가 말리면서 '저 애 같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잖아.'라면서 말린다. 이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참전용사분들께 금전적, 정신적 피해보상을 평생 지급해야 한다고. 참전한 용사들과 함께 살면 전쟁 중에 겪었던 일들이 떠오르는,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테니 무리일 것이고, 휴양지에서 정신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나라에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진의 아버지는 1차세계대전 당시 군의관이었기 때문에 아들 유진 슬레지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짐작하지만, 유진의 어머니나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다는 게, 답답하고 막막한 일이다. 만약 그들이 유진이나 다른 참전용사와 같이 전쟁을 겪었더라면 과연 유진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짜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절대 함부로 얘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유진 슬레지라는 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울증이라는 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쉽게 조언을 하려 한다. 그런데 과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유진 슬레지 역시 그럴 것이다. 결론에 이르러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을 추가한 것 같아 아쉽지만 맥락은 같다.


  전쟁에 참전한 모든 용사님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당신이 있어서 우리가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 04. 09

Clar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