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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kKim - 시 분석] 김희식 시인의 「아버지」분석문

ClarkKim 2018. 3. 20. 13:49

아버지

 

김희식

 

백중 장날

하루 종일 쏘다니다

배가 고파 들어오면

아버지는 이미

집안을 한번 뒤집어 놓고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차라리

저런 아버지는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기성회비 수업료 못 내

복도 양끝

작은형과 마주보며 청소하던 날

하얗게 피어나는 달무리 보며

보리개떡이나 실컷

먹고 싶었다

 

한길가 집들 중

새마을 사업 안 한 집

유일하게 우리뿐이라

동네 이장이 찾아와

아버지와 말다툼하고 가던 날

아버지는 그 날도

장터 모퉁이 골목집에서

동네가 떠나가라고

술 취해 소리 지르며

공화당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방 한 칸에 남은 여섯 식구

숨죽이며 울음 깨물고

골 패인 지붕엔

오랜만에 한줄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자상한 아버지 되어

수염 난 볼로 우리의 얼굴 부빌 때가 잦았다

그 때마다 술 썩는 냄새역하고

수염 따가워 가슴 밀치면

이 애빈 오래 못 산단다

니들이라도 잘 살아야 한다

젖어 드는 한 줄기 강물

가슴이 찡하게 밀려오던 그날 이후

아버진 대전 성모 병원에 입원하시더니

술을 끊으셨다

간경화에 뭐라더라

술 먹으면 죽는 병이란다

 

차라리 그게 좋았다

술 안 드시고 그래도 우리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동안 소홀했던 사진관 일도 돌보시고

형에게 사진일 전수도 시키셨다

나와 함께 냇가에 나가 목욕도 하고

어항 고기도 같이 잡으러 다녔다

 

그렇게 몇 년

가난은 못 벗었지만

울 아버지 자식 사랑 끔찍하게 하시던

내 고3 무렵

아버지는 돋보기에 하나 더 안경을 써야만

사진 일 할 수 있었고

몸져눕는 날이 많아졌다

별로 나아지는 것 없는 자신의 모습에

아침마다 탄력 없는 몸 꾹꾹 누르시며

이젠 몸이 다 썩었다고

더 살고 싶다면서도 그렇게

그 때부터 끊었던 술을 또 드시었다

이젠 그런 아버지가 밉지 않았다

 

그해 가을 제대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큰형이

집안일 도맡아 하며

우리 식구들 웃음꽃

하얗게 피어나던 어느 날

환갑집 사진 찍고 오시던 아버지의 자전거가

둑 아래로 굴렀다고 어느 사람이 말해주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했다

 

신부님의 종부성사 소리 들리고

어머니는 넋 잃고 앉아 계셨다

무슨 죄가 그리도 많기에

단 하루도 빠끔한 날이 없는지

모두들 병원 하얀 천장만 응시했다

 

의사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란다

복수 터져 배 남산만한 아버지

가끔 의식 들어 우리 손 꼭 잡으시며

그냥 펑펑 눈물만 흘리셨다

술에 웬 포한이 들려

평생을 그렇게 살다 제명에 가지 못하고

저렇게 허무하게 가시는지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는데

자식에게 존경 한 번 못 받고

가시는 아버지가 왜 그리도 작아 보이던지

온 집안 식구들 울음을 삼키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향년 사십구 세

붉은 만장 하늘로 날리며

동네 목령산 할머니 사시던 암자 근처로……

 

 

 

아버지, 앉으나 서나 아버지, 하고 낮은 음성으로 불러보면 코끝이 찡해진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자식들에게 한없이 잘해주고도 못내 해주지 못한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나는. 나의 아버지도 그렇다.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항상 최선을 다함에도 술을 한 잔하고 곁으로 올 때면, ‘못해준 게 많아서 미안하다내뱉고 안방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곤 한다. 김희식 시인의 아버지는 어떤 작품일까. 분석해보겠다.

 

백중 장날

하루 종일 쏘다니다

배가 고파 들어오면

아버지는 이미

집안을 한번 뒤집어 놓고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차라리

저런 아버지는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1연은 백중 장날을 맞아 하루 종일 놀다 들어온 화자의 눈앞에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방안을 어지럽힌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화자는 저런 아버지는 없는 편이 낫다고 말하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드러낸다. 백중 장날의 사전적 정의는 농부들이나 머슴들에게 안식일과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머슴들이 벌이는 씨름 대회에서 최고를 가리기도 한다. 백중은 음력 715일을 가리키며 벼농사 중 가장 힘든 논매기가 끝나는 시기이다. 어린 화자의 시선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한껏 구경하고 집에 와서 허기를 달래려는데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안을 흔들어 놓은 모습을 본 화자는 분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기성회비 수업료 못 내

복도 양끝

작은형과 마주보며 청소하던 날

하얗게 피어나는 달무리 보며

보리개떡이나 실컷

먹고 싶었다

 

2연은 화자의 집안 사정을 엿볼 수 있는데, 기성회비를 못 낼 정도면 집안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2, 3행은 화자와 화자의 작은형이 기성회비를 못 내 복도 양끝에서 청소를 하는 장면이다. 4행부터 6행까지는 하얗게 피어나는 달무리 보며/보리개떡이나 실컷/먹고 싶었다고 서술했는데, 달무리는 달이 떴을 때 주변으로 원이 그려지는 것을 말한다. 원이 그려지면 보통 비가 올 징조라고 받아들이곤 했는데, 보리개떡을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요즘 날로 비 오면 막걸리와 파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서러운 마음을 보리개떡 먹고 싶다는 심정으로 드러낸다.

 

한길가 집들 중

새마을 사업 안 한 집

유일하게 우리뿐이라

동네 이장이 찾아와

아버지와 말다툼하고 가던 날

아버지는 그 날도

장터 모퉁이 골목집에서

동네가 떠나가라고

술 취해 소리 지르며

공화당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32행에서는 새마을 사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시대적으로 1970년 일어난 새마을 운동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당시 새마을 운동은 농촌의 근대화, 지역 발전, 의식개혁 등의 운동이었는데 화자의 아버지는 새마을 사업을 하지 않아서 이장과 다투고, 공화당 사람들과 싸우기도 한 것으로 봐서, 화자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보면 당시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이나 줏대를 지킨 행동이라고도 생각한다.

 

방 한 칸에 남은 여섯 식구

숨죽이며 울음 깨물고

골 패인 지붕엔

오랜만에 한줄기 비가 내리고 있었다

 

4연에선 방 한 칸에 남은 여섯 식구라는 1행을 시작으로 비 내리는 날 방 한 구석에 여섯 식구가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다른 집들은 새마을 사업으로 근대화를 이루는데에 반해 화자의 가족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자상한 아버지 되어

수염 난 볼로 우리의 얼굴 부빌 때가 잦았다

그 때마다 술 썩는 냄새역하고

수염 따가워 가슴 밀치면

이 애빈 오래 못 산단다

니들이라도 잘 살아야 한다

젖어 드는 한 줄기 강물

가슴이 찡하게 밀려오던 그날 이후

아버진 대전 성모 병원에 입원하시더니

술을 끊으셨다

간경화에 뭐라더라

술 먹으면 죽는 병이란다

 

말 그대로 5연에서는 그러던 어느 날/아주 오랜만에 자상한 아버지 되어/수염 난 볼로 우리의 얼굴 부빌 때가 잦았다로 시작을 하는데, 화자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썩 반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건지도 모른다. 항상 집안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동네 떠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자상한 아버지가 되었다는 걸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차라리 그게 좋았다

술 안 드시고 그래도 우리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동안 소홀했던 사진관 일도 돌보시고

형에게 사진일 전수도 시키셨다

나와 함께 냇가에 나가 목욕도 하고

어항 고기도 같이 잡으러 다녔다

 

그러나 6연에서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3행부터 6행까지 화자의 아버지는 화자와 형제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사진관 일도 다시 시작하고, 화자의 형에게 사진에 대한 비법을 전수하기도 하고 또 화자와는 냇가에 가서 목욕도 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면서 가족과의 친밀도를 증진시킨다.

 

그렇게 몇 년

가난은 못 벗었지만

울 아버지 자식 사랑 끔찍하게 하시던

내 고3 무렵

아버지는 돋보기에 하나 더 안경을 써야만

사진 일 할 수 있었고

몸져눕는 날이 많아졌다

별로 나아지는 것 없는 자신의 모습에

아침마다 탄력 없는 몸 꾹꾹 누르시며

이젠 몸이 다 썩었다고

더 살고 싶다면서도 그렇게

그 때부터 끊었던 술을 또 드시었다

이젠 그런 아버지가 밉지 않았다

 

7연에서는 그렇게 몇 년 동안 가난에서 벗어나진 못했으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며 화자는 아버지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음에도 밉지 않다고 말한다. 7연에 이르러 화자와 아버지의 관계가 부쩍 가까워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음을 시사한다.

 

그해 가을 제대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큰형이

집안일 도맡아 하며

우리 식구들 웃음꽃

하얗게 피어나던 어느 날

환갑집 사진 찍고 오시던 아버지의 자전거가

둑 아래로 굴렀다고 어느 사람이 말해주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했다

 

8연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1행에는 큰형이 군 제대를 하면서 집안일을 도와줘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5행에서 아버지가 환갑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둑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서 입원을 하게 된다고 서술하면서 아버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부님의 종부성사 소리 들리고

어머니는 넋 잃고 앉아 계셨다

무슨 죄가 그리도 많기에

단 하루도 빠끔한 날이 없는지

모두들 병원 하얀 천장만 응시했다

 

종부성사라는 것은 죽음을 앞둔 이에게 행하는 의식으로 신부가 하나님께 영혼을 의탁하는 것을 말한다. 화자의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듯 넋 잃고 앉아 계셨다고 표현한다.

 

의사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란다

복수 터져 배 남산만한 아버지

가끔 의식 들어 우리 손 꼭 잡으시며

그냥 펑펑 눈물만 흘리셨다

술에 웬 포한이 들려

평생을 그렇게 살다 제명에 가지 못하고

저렇게 허무하게 가시는지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는데

자식에게 존경 한 번 못 받고

가시는 아버지가 왜 그리도 작아 보이던지

온 집안 식구들 울음을 삼키었다

 

10연에서는 의사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란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며 아버지가 곧 죽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화자는 아버지가 술에 웬 포한이 들려/평생을 그렇게 살다 제명에 가지 못하고/저렇게 허무하게 가시는지하며 한탄한다. 이어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는데하며 아버지의 삶을 안타까워한다.

 

그날 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향년 사십구 세

붉은 만장 하늘로 날리며

동네 목령산 할머니 사시던 암자 근처로……

 

결국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떠나게 됐음을 알리는 마지막 연, 11연이다. 만장이라는 것은 죽은 이를 슬퍼하며 지은 글인데, ‘붉은 만장 하늘로 날리며는 하늘로 돌아간 아버지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김희식 시인의 아버지라는 이 시는 유월의 거리에 서서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감상평을 조금 적자면,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방법이 시인에게서 아주 잘 드러난다. 한 편의 시를 읽었다기보다 아버지의 삶을 단편영화로 시청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신기한 건 시인의 작품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비유가 없다. 비유가 없음에도 시인만의 이야기를 시로 적어냈다는 게 나로서는 또 하나의 배울 점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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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0

Clark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