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ClarkKim - 시 분석] 박지웅 시인의 「즐거운 제사」분석문 본문

감상비평글

[ClarkKim - 시 분석] 박지웅 시인의 「즐거운 제사」분석문

ClarkKim 2017. 11. 25. 02:39

즐거운 제사

 

박지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

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들 말석에 세운다. 유리창에 코 박고 들어가자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

향이 반쯤 꺾이면 우리들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

 

 

 

   삶을 살다 보면 의외로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실제로 죽는 것을 보기도 하고 SNS를 통해서 접하기도 한다. 특히나 가까운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에 떠나보낸다면 그 슬픔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기념하기 위한 의식이 제사인데, ‘즐거운 제사’라는 이 시의 제목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지금부터 살펴보자.
   시의 1연에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가족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장소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1행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여기서 향이 반쯤 꺾이다, 라는 대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제사상을 차려본 적은 없지만 세 가지로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말 그대로 향이 반쯤 탄 것이다. 두 번째는 시간적인 의미이다. 세 번째는 조상이 온 것(제사상 앞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봤다. 가장 의미가 근접하다고 본 건 세 번째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감각을 활용한 기법이다. 즉, 향의 냄새로 하여금 조상을 불러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2행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제사를 지내기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을 추모하며 북쪽을 향해 섰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구절은 북쪽이라는 단어를 볼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북쪽은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鬼門)이 있다고 믿었고, 죽은 사람의 머리를 북쪽으로 뉘는 풍습이 있기 때문에 화자는 이렇게 서술한 것이다. 3행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일가一家는 선다’ 열린 시간이라는 것은 이승에 사는 사람과 저승에 있는 조상이 만나는 모습을 넌지시 알려준다. 1연의 내용은 향이 반쯤 탈 때 화자와 가족들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만나는 시간 안에서 조상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2연에서는 화자가 술잔을 향 위에 돌리면서 아버지의 혼을 맞는 장면이다. 1행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화자의 아버지가 언제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구월의 어느 시점에 돌아가신 거라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의 땅 밑은 저승을 의미한다. 다음 2행에서는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문은 1연 3행의 열린 시간과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이 대목은 이 시의 꿈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3행은 화자가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1연과 4연에서의 향이 제사 때 쓰이는 물건이라면, 3연에서의 향은 아버지 또는 조상에 대한 그리움 같은 마음을 나타낸다. 4, 5행은 ‘그 향에 술잔을 돌리며 나는 또/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시각과 촉각이 조화롭게 섞인 문장이다.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 하는 것은 맑은 것은 시리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여기서의 맑은 것은 조상의 혼이며 죽음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부분은 4연에서 계속하겠다.
    3연은 제사상 앞에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1, 2행 ‘어머니, 메 곁에 저분 매만지다 밀린 듯 일어나/탕을 갈아 오신다 촛불이 휜다 툭, 툭 튀기 시작한다’ 시인은 제사상 위의 밥과 그 옆의 젓가락을 정리하는 장면과 시간이 됐다는 듯 탕(어탕·육탕·소탕이 있다)을 갈아 오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다. 탕을 갈아 온다는 점을 미루어봤을 때 공간적 배경은 집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촛불이 휜다’거나 ‘툭, 툭 튀기 시작한다’ 같은 대목은 어떠한 형상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묘사했으며 어떻게 보면 역동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마치 어떤 조상의 혼이 잠깐 왔다 가는 모습을 묘사한 것처럼 말이다. 다음 행인 3, 4행에서는 ‘삼색나물처럼 붙어 다니는/아이들 말석에 세운다.’고 서술했다. 삼색나물이란 무나물·시금치·고사리로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인데 아이들을 삼색나물에 비유한 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제사상의 모습을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산 사람을 죽은 자가 먹는 제사상 음식에 비유한 것은 반인륜적이다, 라고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해낼 수 있고, 자유롭고 감성적인 이 또한 시(詩)만의 매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5행 ‘있다가자 들리는 선친의 순한 이웃들’ 제사를 지내러 가면 작고(作故)한 사람들의 친인척들이 모여앉아 화투를 치거나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죽더라도 언제나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3연의 마지막 행 또한 그렇다. 아버지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 곁에서 조금이나마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
   4연 1행의 ‘한쪽 무릎 세우고 편히 앉아 계시나 멀리 山도 편하다’는 부분은 우리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절할 때를 생각하면 된다. 그들이 앉아 있을 때의 자세를 말한다. 마치 산처럼 말이다. 3, 4행의 ‘엎드려 눈감으면 몸에 꼭 맞는 이 낮고 포근한,/곁!’은 화자가 아버지의 제사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그가 늘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하다고 두 행에 걸쳐 서술한다. 2연에서 ‘맑은 것만큼 시린 것이 있겠는가’하는 대목과 맞닿아 있다.
   시인은 슬픔과 그리움을 담담하면서도 맛깔스럽게 묘사하면서 표현의 극대화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감각의 활용과 적절한 비유 덕에 분석하면서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음에도 각자의 역할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시의 주제는 생사의 공간 안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화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제사를 하면서 함께 있을 수 있고 곁에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시인은 ‘즐거운 제사’라는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