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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내다

ClarkKim의 요즘, 일상

ClarkKim 2019. 11. 17. 18:22

   티셔츠에 녹색 자켓을 하나 걸치고 밖에 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저 날씨가 쌀쌀한 정도이겠거니하고 오늘도 그렇겠지했다.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나무들이 하나둘 옷가지를 벗고 있던 걸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제 봤던 나무가 오늘도 그대로네, 하면서.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도로 집 안으로 들어가 두꺼운 패딩을 걸쳤다. 얇은 자켓만으로는 이 추위를 어떻게 버틸까. 거리로 나오니 손에 종이뭉치를 들고 서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나는 가만히 서서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오늘이 수능이라는 걸 겨우 깨달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이렇게 추웠구나. 이상하게도 수능날만 되면 날씨가 그렇게 춥다. 모든 수험생들의 열기가 한데 모이면서 따뜻한 불꽃이 이는 대신 오히려 단단한 얼음꽃이 피어나는 걸까. 너무 보고 싶으면 그냥 안 보려고 하는 것처럼. 이 대목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이게 뭔 소리야?'하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되는 것처럼.

   전에 빌린 책을 반납하려고 도서관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도로에는 몇몇 차들만 지나다닐 뿐 걸어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나만 그곳에 있었다. 도로가 없었다면 산이었을 그곳. 나무와 나무 사이에 왕복 2차선 도로, 보도블럭 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작은 바람소리를 느꼈다. 조금씩 앞으로 걸을 때마다 바람소리가 커졌다. 그때 강한 바람과 함께 나무들 사이에서 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내게로 날아왔다. 만약 당시의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더라면 나뭇잎이 날아온 게 아니라 나를 덮쳤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나뭇잎의 가무를 감상했다. 그들은 단순히 바람에 몸을 맡기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나는 그게 단순히 바람소리라고만 알고 있었다. 문득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람과 나무가 함께 소리를 내고 춤을 추는 걸 보며 손을 잡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뭇잎의 작은 선물, 작은 공연을 생각하며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 생각하곤 한다.

 

2019. 11. 17

Clark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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