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13)
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나는 지금 황당하고 또 당황스럽다. 글을 쓰기 시작한 2008년의 어느 날부터 나는 내가 쓴 모든 글을 보관해왔다. 그중 보고서(리포트)와 습작품은 프린트하기도 했다. 이번 년도에 들어서서는 글을 쓰긴 써도 프린트를 한 적이 거의 없으니 주로 내 노트북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평소대로라면 글을 쓰고 나서 메일에도 올리곤 했는데, 문제는 메일에 등록하지 않은 작품을 포함해 여태 내가 썼던 모든 것들이 깨졌다. 파일이 한글문서 모양이 아니라 빈 페이지에 한글문서 모양이 들어가 있는, 그래서 열리지도 않고 설령 열린다 해도 웬 이상한 상형문자가 적혀 있다. 복구하려고 시도했으나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며칠째 글을 쓸 의욕을 잃은 상태다. 이러니 화가 나지 않을 ..
오랜만에 산책과 운동을 동시에 했다. 점심에 돈까스를 먹으러 가면서 이 돈까스를 먹으면 운동 2시간 예약하는 거라고 다짐했다. 집 근처에 내려와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처음엔 천천히 걷다가 점점 속도를 냈다. 강을 따라 걸었는데 며칠 전에는 없던 꽃들이 예쁘게 피었다. 여기에 꽃이 있었나. 내가 봤던 건 수풀뿐이었는데 가을이 왔다고 서둘러 꽃들이 단장을 했나보다. 꽃 주위로 나비와 벌들이 날아다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근래엔 비 때문에 대체적으로 짙은 구름뿐이었는데 변검하듯 맑은 하늘이 된 게 신기했다. 운동복도, 운동화도 안 신고 걸으니 피로해서 호수 중앙의 벤치에 앉았다. 운동기구를 활용하며 근력 운동을 하는데 갑자기 무지개가 보였다. 무지개가 떠오를 쯤 나는 '너'를 생각했다. 너와 S호..
감상문이나 분석문을 올린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글만 안 썼을 뿐이지,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다. 얼마 전 친구 집에서 책 몇 권을 빌렸다. 그중의 한 권이 아직도 나를 미치게 만든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읽으면서 나는 내내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미친 작품이라고. 책 뒷면에 보면 미국 여성의 전 연령층이 열광했다던데 남자가 봐도 열광할 만하다. 영화로 나왔을 때 볼까 하다가 안 봤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보길 잘한 것 같다. 확실히 소설은 소설만의 매력이 있다. 상상력은 끝이 없기 때문에 소설에서의 인물들은 내 상상 속에서 각자의 특징을 뽐낸다. 그런데 영화를 보게 된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질 것 같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계속 미룰 생각이다. 야한 소설..
반쯤 취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몇 주 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딱히 술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술을 함께 마실 모임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술이 당기더라. 그래서 먹었다. 나는 원래 잔에 따라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병째 마신다. 그게 좋다. 혼자 잔에 따라놓고 마시면 뭔가 처량해보인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잔에 따라 마시는 문화가 딱히 좋진 않다. 여하튼, 나는 지금 술을 마시고 이 글을 쓰고 있고, 글을 쓰면서도 술을 마시고 있다. 언젠가 친한 형이 자신의 지인이 독립출판을 했다는 소식을 들려왔다. 한창 작품을 쓰고 있을 때 나도 독립출판을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독립출판을 하기를 망설였다. 낮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정말..
우리는 어떨 때 인간적이다, 라는 말을 쓸까? 모 저자가 쓴 책에서는 이렇게 정의했다. 따뜻함. 약자에게 손 내미는 행동.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사람 말고 약자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줄 때 우리는 마음에 평화가 깃듦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처럼 인간은 선한 모습 말고 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일을 저버리는 행동 같은 거 말이다. 뉴스에 자주 나오듯 돈에 얽매여 타인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심하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도 우린 참 인간적이야, 하고 말할까? 그러므로 나는 인간적이라는 말이 마냥 따뜻함만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던가? 언젠가 나도 지금 한 말과 다르게 누군가의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