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59)
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하루 정해진 양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드와이저 한 병을 샀다. 특별히 좋아하는 술이 있냐고 묻는다면 딱히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전엔 자몽이 들어간 소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술이라면 다 비슷비슷할 테니. 아마 내가 애주가가 아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술이 좀 당기는 날이었다. 글쎄, 이 역시 이유는 없다. 뭔가 지독하게 슬픈 것도 아니었고, 모종의 압력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역시 그냥 마시고 싶은 날 정도. 집에 와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간단하게 씻었다. 맥주를 먹기 위한 준비는 마쳤다. 평소엔 잘만 보이던 병따개가 먹을라치면 꼭 없다. 하는 수 없이 숟가락으로 병마개를 땄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를 보며 먹을 요량이었으나 한때 친하게 지내던 ..
꿈을 정하고 목표를 정해야 할 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소설가로 살겠노라고. 또 작가로 살겠다고. 소설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쓰는 게 좋았고 내 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평을 하는 걸 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일에 치여 살고 있느라 글쓰기 같은 건 손도 못 대고 있다고 변명하고 있다. 사실 일 마치고 오면 매일 같이 블로그의 문을 열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후 입 안에 머금고 음미하기도 했고 꼭꼭 씹기도 하고 몇 개는 뱉기도 했다. 그뿐이다. 머릿속에 입력한 건 끝내 인쇄하지 못했다. 3월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 글을 출력하는 중이다. 그런 생각이 종종 드는 날들이다. 조금만 더 고집을 피워볼 걸, 주위 사람이 반대해..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아마 우연히 내 블로그에 들러 이 감상문을 읽을 손님부터 블로그 볼 시간 없이 일을 하는 분들까지. 볼일을 마치고 잠깐의 틈을 내어 들른 카페에서 이 책은 나에게 왔다. 나는 내게 오는 모든 것을 손을 들어 막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게 나를 기쁘게 할 수도, 슬프고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쨌든 나는 『당신의 주말을 힐링하라』라는 책장을 펼쳤다. 처음 읽을 땐 턱을 괸 채 편안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겼다. 하지만 장 넘김이 계속 될수록 나는 아예 고개를 파묻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에게 굉장히 필요한 조언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책엔 설명문과 소주제 마지막에 체크리스트가 있다. 힐링을 잘 하고 있는지,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맞으며 서 있다. 땀을 쏟아내며 일하던 날 이후 맞이하는 휴식의 기간에 나는 발꿈치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내 삶을 아우르는 기억의 한 조각을 집게손가락으로 벌리면 그 속엔 너와 했던 모든 것이 떠오르곤 한다. 한 번은 여수의 밤 바다를 보기 위해 무작정 기차를 탔다. 늦은 밤 기차가 잠든 승객을 태우고 까맣게 흘러내린 물감 같은 밤에 빛으로 구멍을 내며 끝없이 달렸다. 나는 그 안에 타 있는 승객들 중 한 명이었다. 단지 여수라는 지역과 밤의 바다를 보기 위해 깨 있었는데 그 밤은 이상하리만치 하얗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잠든 옆자리 승객에 눈길을 주는 일을 반복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모래사장 위의 소라껍질 대신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선박들뿐이었다. 너와..
있잖아. 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날이야.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바라보고 듣기만 하는 날. 다른 날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날이라면, 오늘만큼은 수동적으로 받고만 싶은 날.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침묵을 지키고픈 날이야.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을 안 했어. 누군가 말을 해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지. 당장 뭘 할 수가 없어. 모처럼 쉬는 날이니만큼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었거든. 어젠 일주일 분량의 말을 다 쏟아낸 날이었지. 오랜만에 만취하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지. 그렇게 속을 게워내듯 말하고 나니 시원했어.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에 바쁜 삶을 살고 있으니 속내를 말할 시간이 없었지. 어젠 그렇게 말을 했으니 오늘은 입을 닫고 ..
나는 J를 잘 모른다.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많진 않은 그런 정도. 그러다 언젠가 음악을 듣던 중 그의 노래를 듣게 됐다. 하루의 끝 첫 소절을 듣자마자 뺨이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후렴구에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하는 대목에선 눈물이 흘렀다. 나는 슬픔이 끓어오르다가 잠잠해지는 그 감정을 아직도 글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J는 그렇게 갔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생의 마감, 끝. 그가 어떤 마음으로 생을 등졌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그 병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구한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털어놓는다 해도 누가 이것을 알아줄 것이며, 어떻게 해도 위로 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죽음이란 참 묘한 기분을..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축구선수도 아니고, 축구 관련 기자도, 캐스터도, 해설자도 아니다. 그저 나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한때 축구선수를 꿈꿨던, 그러나 지금은 축구와 딱히 관련 없는 일반인이다. 그렇다고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종류의 글을 쓴다고 해서 간혹 내가 축구계의 대단한 양반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생각없이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어서 미리 적는다. 약 6시간 전에 아시안게임 8강전 우리나라와 카타르와의 경기가 있었다. 경기는 1:0 패배. 90분 경기 중 79분에 먹힌 골이 승패를 갈랐다. 역습으로 이어진 공격에서 미드필드 라인 왼쪽에 있던 아피프 선수가 중앙에 있던 하템 선수에게 패스를 줬고, 하템 선수가 왼쪽으로 드리블하다가 기습적인 ..
2018년엔 뭘 했지? 매 해의 초는 뭘 할까 하는 계획을 세운다. 마찬가지로 매 해의 말은 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도 그렇다. 일찍 일어나 지금까지 하루종일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3월, 6월, 9월, 12월, 그리고 12월 31일 오늘, 나는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일기를 종종 써왔으니 그걸 보면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대강 알 수 있으리라. 그러나 특별히 무언가를 해냈다는 결과물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며 2018년을 보냈던 것일까. 아침에 주차장 앞에 서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수많은 어제가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 말인즉슨, 내가 오늘 제대로 살지 않으면 미래는 더이상 발전하지 않은 지금의 연속인 것이다.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천 리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