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내다 (50)
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나는 건물을 볼 때 아름다움과 예술성 등을 먼저 본다.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볼 수 있는 인간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그 이후에 내가 가지는 감정에의 사고인데, 건물을 보면 이 건물을 지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그 사람들의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건물에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바르고 전기 선을 연결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지붕을 만들고 방과 복도 이곳저곳을 누비며 쓸고 닦았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공사현장에 나가 여러 번 일해본 적도 있다. 일할 때 창문 근처에 있으면 담배를 태우며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헐벗은 야산을 마주할 때도 많았다. 아마 그렇게 밖을 쳐다보던 행동은 행여..
1001101 프로젝트는 대학시절 내가 나 혼자 진행했던 프로젝트이다. 100편의 시를 읽고 1편의 시를, 10편의 소설을 읽고 1편의 소설을 창작하기. 나만의 작품을 여러 편 만들고 공모전에 투고하기 위해 자긍심을 고취시킬 뿐 아니라 투지를 불태우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다. 졸업을 하고,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지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 전 다시 글을 쓰기 전까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과거에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1001101 프로젝트. 100편의 시를 읽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시 한 권도 100편의 시와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에 나는 ..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싫든 좋든 계속 해야만 하는 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에겐 그런 건 독과 같은 것. 티스토리뿐만 아니라, 한동안 글 자체를 잊고 살았다. 그 때문에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 남들에겐 발전의 시간이 내겐 의미없는 숫자들의 연속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글은 내 인생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이 순간, 나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가까이 두고 있던 일이라 작별하는 게 낯설었다. 마음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데, 몸은 자꾸 밀어낸다.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왔다. 여지껏 단 한 번도 나는 글을 빼놓고 내 인생을 논한 적이 없다. 길을 걷을 때, 커피를 마실 때, 밥을 먹을 때, 잠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심지어 잠을..
상실의 시대는 읽다 보면 그것이 몇 페이지이든간에 나를 그 안으로 자석처럼 끌고 들어가버리곤 한다. 내가 천천히 읽고 싶어하든 그 반대든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래서 마침내 책의 결말까지 순풍을 탄 배처럼 전속력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다. 하루키의 필력은 나를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나는 상실의시대에 휩쓸려 결말까지 가고 싶지 않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아니라고 해도 이야기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면 몽환적 분위기가 좋아서 아주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오래도록 함께 발 맞춰 걷고 싶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손을 맞잡은 연인처럼.
우리는 어떨 때 인간적이다, 라는 말을 쓸까? 모 저자가 쓴 책에서는 이렇게 정의했다. 따뜻함. 약자에게 손 내미는 행동.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사람 말고 약자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줄 때 우리는 마음에 평화가 깃듦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처럼 인간은 선한 모습 말고 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일을 저버리는 행동 같은 거 말이다. 뉴스에 자주 나오듯 돈에 얽매여 타인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심하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도 우린 참 인간적이야, 하고 말할까? 그러므로 나는 인간적이라는 말이 마냥 따뜻함만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던가? 언젠가 나도 지금 한 말과 다르게 누군가의 따..
남극에서부터 불어올 만한 강한 추위가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전보다 더 많은 바람이 몰려와 내 가슴팍을 통과해서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옷깃을 세게 여민다. 그에 따라 어깨도 더 움츠러드는 것 같다. 하루의 절반 동안 빛을 내던 태양이 힘을 잃고 떨어질 때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사러 간다는 명목 하에 드라이브를 가기 위함이었다. 아니, 드라이브를 간다는 명목 하의 외출인지도 모른다.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들이 차창 위로 덮여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잠을 자던 자동차의 목에 열쇠를 밀어 넣고 시계 방향으로 반 바퀴 돌리며 와이퍼를 켰다. 기지개를 켜듯 엔진에서 웅웅 소리 끝에 시동이 걸렸다. 나는 엑셀을 밟고 단지를 벗어났다. 주말이라 쉰다고 집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
2017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필름처럼 지나간다. 이제 약 40분 있으면 2017년은 완전한 과거가 되어버린다. 2018년을 살고 있는 내가 있겠지. 17년 새해를 맞이하며 계획을 작성하던 나였는데, 어느새 18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일을 끝냈다. 약 삼 개월간 하던 일이었는데 내년부터 시스템이 바뀌면서 오늘이 마지막이 되었다. 물론 일 주일 전에 그런 이야기를 전달 받았다. 오늘은 일을 하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매니저 형과 주방 이모께서 내게 너무 잘해주셨기 때문일까. 형과 이모한테 작별 인사를 할 때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형에겐 옷과 편지를, 이모에겐 목도리와 장갑과 편지를. 마지막이니까 말할 수 있다. 너무나 감사했고, 'ㄱ'―매장 이름―하면 형과 이모..
짧은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내가 일을 하는 곳은 작은 매장이다. 하지만 매장 넓이와는 반비례하게 아주 많은 사람이 와서 음식을 먹고 간다. 대체적으로 요식업이 다 그렇듯 따로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고맙게도 매니저님이 담배를 한 대 태우러 가도 좋다는 허락하에 나는 약 2분에서 4분 정도의 쉬는 시간을 얻는다. 오늘도 손님이 적은 시간대에 쉬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비가 조금 오다가 그쳤고, 미세먼지 때문에 안 그래도 뿌옇던 하늘이 더 흐려졌다. 내가 자주 앉곤 하던 계단에도 빗물이 스며들어 있었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일이다보니 쉬는 시간을 얻어냈을 땐 앉고 싶은데, 빗물에 옷이 젖을까 싶어서 그냥 서 있었다. 마침 그곳에는 물건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던 노부부가 있었다. 그분들은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