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내다 (50)
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나는 용서하겠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친구가 별 생각 없이 옷에 대해 지적한 것이 기분 나빴으나, 나는 그 친구를 용서하겠습니다. 잦은 앞지르기를 해서 나와 추돌사고가 날 뻔했지만 나는 그분을 용서합니다. 또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내게 어떤 방법으로든 악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들을 용서하는 한편, 함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설령 논쟁과 다툼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용서하는 길이며 미래를 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됨을 믿습니다. 내겐 용기와 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감추기만 할 게 아니라 온전한 방법으로 터뜨리게끔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해낼 ..
간만에 바Bar에 갔다. 나는 바를 즐겨찾는 것도 그렇다고 소홀한 것도 아니고 딱 중간 정도로 찾곤 한다. 그날따라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그 바가 가고 싶어졌다. 앞선 자리에서 적당하게 마신 후 간 거라 몽롱한 정신을 겨우 유지하며 올라섰다. 자리는 긴 탁자를 사이에 둔, 바 메이드와 시선을 교환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앉아서 뭘 마실지 고민하다가 결국 고른 건 미도리샤워였다. 나는 미도리샤워를 종종 마신다. 처음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책 중 『상실의 시대』의 인물 '미도리'가 생각나 골랐는데, 마시면 마실수록 자꾸 찾게 됐다. 그래서 바에 가면 십중팔구 첫 잔은 미도리샤워이다. 바 메이드가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나는 이름 모를 몇 병의 양주를 보고 있었다. 마침 바 메이드가 만들어온 칵테일을 내게 건넸..
하루 정해진 양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드와이저 한 병을 샀다. 특별히 좋아하는 술이 있냐고 묻는다면 딱히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전엔 자몽이 들어간 소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술이라면 다 비슷비슷할 테니. 아마 내가 애주가가 아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술이 좀 당기는 날이었다. 글쎄, 이 역시 이유는 없다. 뭔가 지독하게 슬픈 것도 아니었고, 모종의 압력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역시 그냥 마시고 싶은 날 정도. 집에 와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간단하게 씻었다. 맥주를 먹기 위한 준비는 마쳤다. 평소엔 잘만 보이던 병따개가 먹을라치면 꼭 없다. 하는 수 없이 숟가락으로 병마개를 땄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를 보며 먹을 요량이었으나 한때 친하게 지내던 ..
꿈을 정하고 목표를 정해야 할 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소설가로 살겠노라고. 또 작가로 살겠다고. 소설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쓰는 게 좋았고 내 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평을 하는 걸 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일에 치여 살고 있느라 글쓰기 같은 건 손도 못 대고 있다고 변명하고 있다. 사실 일 마치고 오면 매일 같이 블로그의 문을 열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후 입 안에 머금고 음미하기도 했고 꼭꼭 씹기도 하고 몇 개는 뱉기도 했다. 그뿐이다. 머릿속에 입력한 건 끝내 인쇄하지 못했다. 3월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 글을 출력하는 중이다. 그런 생각이 종종 드는 날들이다. 조금만 더 고집을 피워볼 걸, 주위 사람이 반대해..
있잖아. 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날이야.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바라보고 듣기만 하는 날. 다른 날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날이라면, 오늘만큼은 수동적으로 받고만 싶은 날.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침묵을 지키고픈 날이야.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을 안 했어. 누군가 말을 해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지. 당장 뭘 할 수가 없어. 모처럼 쉬는 날이니만큼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었거든. 어젠 일주일 분량의 말을 다 쏟아낸 날이었지. 오랜만에 만취하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지. 그렇게 속을 게워내듯 말하고 나니 시원했어.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에 바쁜 삶을 살고 있으니 속내를 말할 시간이 없었지. 어젠 그렇게 말을 했으니 오늘은 입을 닫고 ..
나는 J를 잘 모른다.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많진 않은 그런 정도. 그러다 언젠가 음악을 듣던 중 그의 노래를 듣게 됐다. 하루의 끝 첫 소절을 듣자마자 뺨이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후렴구에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하는 대목에선 눈물이 흘렀다. 나는 슬픔이 끓어오르다가 잠잠해지는 그 감정을 아직도 글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J는 그렇게 갔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생의 마감, 끝. 그가 어떤 마음으로 생을 등졌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그 병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구한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털어놓는다 해도 누가 이것을 알아줄 것이며, 어떻게 해도 위로 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죽음이란 참 묘한 기분을..
2018년엔 뭘 했지? 매 해의 초는 뭘 할까 하는 계획을 세운다. 마찬가지로 매 해의 말은 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도 그렇다. 일찍 일어나 지금까지 하루종일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3월, 6월, 9월, 12월, 그리고 12월 31일 오늘, 나는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일기를 종종 써왔으니 그걸 보면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대강 알 수 있으리라. 그러나 특별히 무언가를 해냈다는 결과물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며 2018년을 보냈던 것일까. 아침에 주차장 앞에 서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수많은 어제가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 말인즉슨, 내가 오늘 제대로 살지 않으면 미래는 더이상 발전하지 않은 지금의 연속인 것이다.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천 리 길 ..
반쯤 취한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몇 주 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딱히 술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술을 함께 마실 모임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술이 당기더라. 그래서 먹었다. 나는 원래 잔에 따라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병째 마신다. 그게 좋다. 혼자 잔에 따라놓고 마시면 뭔가 처량해보인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잔에 따라 마시는 문화가 딱히 좋진 않다. 여하튼, 나는 지금 술을 마시고 이 글을 쓰고 있고, 글을 쓰면서도 술을 마시고 있다. 언젠가 친한 형이 자신의 지인이 독립출판을 했다는 소식을 들려왔다. 한창 작품을 쓰고 있을 때 나도 독립출판을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독립출판을 하기를 망설였다. 낮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