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내다 (52)
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오랜만에 군복을 입었다. 현역이었던 과거와 예비군인 지금, 군복을 입을 때면 언제나 비슷한 감정이 떠오른다. 여름엔 지나치게 덥고 겨울엔 어마어마하게 춥다. 또 자유를 갈망하게 되고, 나와 다른 성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아마 현역시절 평복 대신 군복만 입었기에 그때가 떠올라서일까. 언젠가 모 SNS 사이트에 현금 1억 주면 군대 갈 것인가에 대한 찬반 투표가 나왔던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 그때 대다수의 군필은 1억 줘도 안 간다, 5억이면 생각해보겠다 등 반대표를 던졌다. 1억이면 연봉 2~3천 기준으로 약 5년에서 10년을 안 쓰고 악착같이 모아야 가질 수 있는 돈인데 그걸 마다한다니…… 군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정부가 군인과 군필자들에 대한 처우가 어떤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닐까. 단지 ..
감상문이나 분석문을 올린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글만 안 썼을 뿐이지,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다. 얼마 전 친구 집에서 책 몇 권을 빌렸다. 그중의 한 권이 아직도 나를 미치게 만든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읽으면서 나는 내내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미친 작품이라고. 책 뒷면에 보면 미국 여성의 전 연령층이 열광했다던데 남자가 봐도 열광할 만하다. 영화로 나왔을 때 볼까 하다가 안 봤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보길 잘한 것 같다. 확실히 소설은 소설만의 매력이 있다. 상상력은 끝이 없기 때문에 소설에서의 인물들은 내 상상 속에서 각자의 특징을 뽐낸다. 그런데 영화를 보게 된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질 것 같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계속 미룰 생각이다. 야한 소설..
나는 용서하겠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친구가 별 생각 없이 옷에 대해 지적한 것이 기분 나빴으나, 나는 그 친구를 용서하겠습니다. 잦은 앞지르기를 해서 나와 추돌사고가 날 뻔했지만 나는 그분을 용서합니다. 또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내게 어떤 방법으로든 악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들을 용서하는 한편, 함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설령 논쟁과 다툼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용서하는 길이며 미래를 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됨을 믿습니다. 내겐 용기와 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감추기만 할 게 아니라 온전한 방법으로 터뜨리게끔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해낼 ..
간만에 바Bar에 갔다. 나는 바를 즐겨찾는 것도 그렇다고 소홀한 것도 아니고 딱 중간 정도로 찾곤 한다. 그날따라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그 바가 가고 싶어졌다. 앞선 자리에서 적당하게 마신 후 간 거라 몽롱한 정신을 겨우 유지하며 올라섰다. 자리는 긴 탁자를 사이에 둔, 바 메이드와 시선을 교환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앉아서 뭘 마실지 고민하다가 결국 고른 건 미도리샤워였다. 나는 미도리샤워를 종종 마신다. 처음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책 중 『상실의 시대』의 인물 '미도리'가 생각나 골랐는데, 마시면 마실수록 자꾸 찾게 됐다. 그래서 바에 가면 십중팔구 첫 잔은 미도리샤워이다. 바 메이드가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나는 이름 모를 몇 병의 양주를 보고 있었다. 마침 바 메이드가 만들어온 칵테일을 내게 건넸..
하루 정해진 양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드와이저 한 병을 샀다. 특별히 좋아하는 술이 있냐고 묻는다면 딱히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전엔 자몽이 들어간 소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술이라면 다 비슷비슷할 테니. 아마 내가 애주가가 아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술이 좀 당기는 날이었다. 글쎄, 이 역시 이유는 없다. 뭔가 지독하게 슬픈 것도 아니었고, 모종의 압력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역시 그냥 마시고 싶은 날 정도. 집에 와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간단하게 씻었다. 맥주를 먹기 위한 준비는 마쳤다. 평소엔 잘만 보이던 병따개가 먹을라치면 꼭 없다. 하는 수 없이 숟가락으로 병마개를 땄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영화를 보며 먹을 요량이었으나 한때 친하게 지내던 ..
꿈을 정하고 목표를 정해야 할 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소설가로 살겠노라고. 또 작가로 살겠다고. 소설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쓰는 게 좋았고 내 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평을 하는 걸 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일에 치여 살고 있느라 글쓰기 같은 건 손도 못 대고 있다고 변명하고 있다. 사실 일 마치고 오면 매일 같이 블로그의 문을 열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후 입 안에 머금고 음미하기도 했고 꼭꼭 씹기도 하고 몇 개는 뱉기도 했다. 그뿐이다. 머릿속에 입력한 건 끝내 인쇄하지 못했다. 3월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 글을 출력하는 중이다. 그런 생각이 종종 드는 날들이다. 조금만 더 고집을 피워볼 걸, 주위 사람이 반대해..
있잖아. 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은 날이야. 아무 말도 않고 그냥 바라보고 듣기만 하는 날. 다른 날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날이라면, 오늘만큼은 수동적으로 받고만 싶은 날.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침묵을 지키고픈 날이야.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을 안 했어. 누군가 말을 해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지. 당장 뭘 할 수가 없어. 모처럼 쉬는 날이니만큼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었거든. 어젠 일주일 분량의 말을 다 쏟아낸 날이었지. 오랜만에 만취하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었지. 그렇게 속을 게워내듯 말하고 나니 시원했어.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에 바쁜 삶을 살고 있으니 속내를 말할 시간이 없었지. 어젠 그렇게 말을 했으니 오늘은 입을 닫고 ..
나는 J를 잘 모른다.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많진 않은 그런 정도. 그러다 언젠가 음악을 듣던 중 그의 노래를 듣게 됐다. 하루의 끝 첫 소절을 듣자마자 뺨이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후렴구에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하는 대목에선 눈물이 흘렀다. 나는 슬픔이 끓어오르다가 잠잠해지는 그 감정을 아직도 글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J는 그렇게 갔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생의 마감, 끝. 그가 어떤 마음으로 생을 등졌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그 병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구한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털어놓는다 해도 누가 이것을 알아줄 것이며, 어떻게 해도 위로 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죽음이란 참 묘한 기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