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의 특별함을 찾아내다 (50)
연주하는 펜, 글을 적는 기타
내가 사는 동네는 요즘 들어 부쩍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다니는 반려동물, 사람을 위해 짓고 있는 건물,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 새까만 아스팔트 도로 그리고 그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세 가지 색의 신호등.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로의 신호에 맞춰 일정하게 움직인다.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없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청색 신호를 보고 움직이거나 둘 중 하나다. 신호등이란 존재는 통행을 원활하게 해준다. 신호에 맞게 움직이면 모든 게 수월해진다. 나 역시 그런 신호등의 존재에 감사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신호등의 지시를 받고 가다가 깜빡 깜빡하며 점멸하는 신호등을 보면 우선 브레이크를 밟고 선다. 그냥 갈까 하다가도 주변에 차가 오는지..
거리를 걸을 때 나는 아주 가끔 교차로 위에서 점멸하는 신호등을 볼 때가 있다. 종종 점멸하는 신호등을 바라볼 때면 평소보다 몇 초 정도 더 멈춰 있는 신호를 느끼곤 한다. 신호등을 볼 때처럼, 또 신호등처럼 아주 가끔은 자리에 멈춰 서서 우리네의 삶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그리하여 나는 점멸하는 신호등 한켠에 서서 아직 오지 않은 내 영혼을 이따금씩 기다리곤 한다. 2019. 12. 11 미세먼지 많은 어느 날, 점멸하는 신호등 앞에서. ClarkKim
별을 본 적이 언제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별을 좋아했을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꽤 오래 전부터 별을 좋아해왔다고, 동경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 별을 봤다. 아니, 오늘 별을 봤다. 비와 안개 때문에 별을 보지 못했던 지난 날들을 다 잊게 만들 정도의 강렬함을 느꼈다. 마음이 맑아지면서 이 별을 보기 위해 내가 살고 있구나싶었다. 별은 참 아름답다. 머리 위에서 쏟아질 것 같은 별들도 예쁘고, 아직 채 빛을 쏘아보내지 않은 별들 사이로 힘 있게 제 일을 다하는 별들도 아름답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땀을 흘려가며 내는 빛을 보고 '정말 아름답다'며 넋 놓고 바라볼 뿐이다. 감사하고 미안하다. 언젠가는 내 땀방울이 빛을 낼 수 있겠지. 해서 먼 행성에서 내 땀방울을 보고 예..
티셔츠에 녹색 자켓을 하나 걸치고 밖에 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저 날씨가 쌀쌀한 정도이겠거니하고 오늘도 그렇겠지했다.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나무들이 하나둘 옷가지를 벗고 있던 걸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제 봤던 나무가 오늘도 그대로네, 하면서.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도로 집 안으로 들어가 두꺼운 패딩을 걸쳤다. 얇은 자켓만으로는 이 추위를 어떻게 버틸까. 거리로 나오니 손에 종이뭉치를 들고 서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나는 가만히 서서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오늘이 수능이라는 걸 겨우 깨달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이렇게 추웠구나. 이상하게도 수능날만 되면 날씨가 그렇게 춥다. 모든 수험생들의 열기가 한데 모이면서 따뜻한 불꽃이 이는 대신 오히려 단단한 얼음꽃이 피어나는 걸까. 너무 ..
이런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나는 지금 황당하고 또 당황스럽다. 글을 쓰기 시작한 2008년의 어느 날부터 나는 내가 쓴 모든 글을 보관해왔다. 그중 보고서(리포트)와 습작품은 프린트하기도 했다. 이번 년도에 들어서서는 글을 쓰긴 써도 프린트를 한 적이 거의 없으니 주로 내 노트북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평소대로라면 글을 쓰고 나서 메일에도 올리곤 했는데, 문제는 메일에 등록하지 않은 작품을 포함해 여태 내가 썼던 모든 것들이 깨졌다. 파일이 한글문서 모양이 아니라 빈 페이지에 한글문서 모양이 들어가 있는, 그래서 열리지도 않고 설령 열린다 해도 웬 이상한 상형문자가 적혀 있다. 복구하려고 시도했으나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며칠째 글을 쓸 의욕을 잃은 상태다. 이러니 화가 나지 않을 ..
오랜만에 산책과 운동을 동시에 했다. 점심에 돈까스를 먹으러 가면서 이 돈까스를 먹으면 운동 2시간 예약하는 거라고 다짐했다. 집 근처에 내려와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처음엔 천천히 걷다가 점점 속도를 냈다. 강을 따라 걸었는데 며칠 전에는 없던 꽃들이 예쁘게 피었다. 여기에 꽃이 있었나. 내가 봤던 건 수풀뿐이었는데 가을이 왔다고 서둘러 꽃들이 단장을 했나보다. 꽃 주위로 나비와 벌들이 날아다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근래엔 비 때문에 대체적으로 짙은 구름뿐이었는데 변검하듯 맑은 하늘이 된 게 신기했다. 운동복도, 운동화도 안 신고 걸으니 피로해서 호수 중앙의 벤치에 앉았다. 운동기구를 활용하며 근력 운동을 하는데 갑자기 무지개가 보였다. 무지개가 떠오를 쯤 나는 '너'를 생각했다. 너와 S호..
오랜만에 군복을 입었다. 현역이었던 과거와 예비군인 지금, 군복을 입을 때면 언제나 비슷한 감정이 떠오른다. 여름엔 지나치게 덥고 겨울엔 어마어마하게 춥다. 또 자유를 갈망하게 되고, 나와 다른 성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아마 현역시절 평복 대신 군복만 입었기에 그때가 떠올라서일까. 언젠가 모 SNS 사이트에 현금 1억 주면 군대 갈 것인가에 대한 찬반 투표가 나왔던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 그때 대다수의 군필은 1억 줘도 안 간다, 5억이면 생각해보겠다 등 반대표를 던졌다. 1억이면 연봉 2~3천 기준으로 약 5년에서 10년을 안 쓰고 악착같이 모아야 가질 수 있는 돈인데 그걸 마다한다니…… 군대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정부가 군인과 군필자들에 대한 처우가 어떤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닐까. 단지 ..
감상문이나 분석문을 올린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글만 안 썼을 뿐이지,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다. 얼마 전 친구 집에서 책 몇 권을 빌렸다. 그중의 한 권이 아직도 나를 미치게 만든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읽으면서 나는 내내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미친 작품이라고. 책 뒷면에 보면 미국 여성의 전 연령층이 열광했다던데 남자가 봐도 열광할 만하다. 영화로 나왔을 때 볼까 하다가 안 봤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 보길 잘한 것 같다. 확실히 소설은 소설만의 매력이 있다. 상상력은 끝이 없기 때문에 소설에서의 인물들은 내 상상 속에서 각자의 특징을 뽐낸다. 그런데 영화를 보게 된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질 것 같다. 그래서 보고 싶어도 계속 미룰 생각이다. 야한 소설..